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독교(개신기독교)를 무조건 적으로 비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점이 잘못인지 비판하고자 함이며, 박노자 교수의 글을 빌어서 말하고자 합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겨레신문사 - 2001년 출간.
81P.ㆍㆍ(전략)ㆍㆍ나에게 가장 부끄러웠던 일은 고려 대학교에서 유학하던 시절인 9년 전에 일어났다. 그때 형편이 어려운 소련 학생으로서 무슨 부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그 대학 후문 뒤에 있는 한 성경 읽기 모임(개신교 성향을 띤 일종의 학생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 모임과 접촉하면서 일어난 일이 모두 마음속에 큰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첫째, 그 모임이 나를 처음부터 놀라게 한 것은 내가 과거에 속했던 소련 콤소몰(공산주의 청년동맹) 뺨치는 철저한 출석ㆍ회원 관리였다. 일단 회원이 되고 나면 그 모임을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탈퇴를 '영적인 타락'으로 생각하는 그 모임 지도자들은 거의 강요에 가까운 전화와 방문, 설득과 종용의 공세를 퍼부어 탈퇴를 결사적으로 저지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화장실에서든 쓰레기 소각장에서든 신과 마음속으로 대화할 수 있으며, 교회나 사찰은 마음이 부르는 때에 가면 된다고 굳게 믿었던 나는, '소속감과 출석을 통한 영혼 구원'의 논리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집단이든 출석 관리를 통해 소속감을 확인하고 결속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결석ㆍ탈퇴 인원이 많을수록 헌금 액수가 적어진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집단주의와 돈이라는 속된 논리가 성스러워야 할 교회까지 침범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둘째, 그 모임에서는 기도를 비롯해 모든 신앙 행위를 공개적으로 남 앞에서 해야 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다.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서 안 보는 데에서 하라는 예수의 말씀도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남 앞에서 '나의 신'과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에게는 남 앞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남이 보는 데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격이었다. 그러나 그 모임에서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여야 할 기도를 '우리 다 같이' 식으로 할 뿐만 아니라, 기도의 성실성에 따라서 일종의 성적을 매기기까지 하였다. 그건 나에게는 이미 공개적 성행위의 차원을 넘어, 난교 파티에서 참석자의 정력을 누군가가 평가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교회와 난교 파티를 비교한다는 것을 지나친 언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 마음속을 드러내는 기도를 남 앞에서 한다는 것이 그만큼 독신적(瀆神的) 행위였다.
셋째, 그 모임의 회원들은 개신교 신자가 아닌 인간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으로 믿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더 무서운 독신 행위였다.
유태인 부친과 혼혈 계통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유태교와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때 러시아 침례교회에 나가기도 했으며, 결국 불교의 교리에 심취하여 철학적으로 그 전통에 몸을 붙이는 등 '종교 편력'을 경험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종교와 민족, 문화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이 영적으로 평등하다는 신념이었다. 즉, 믿음의 대상보다 믿음의 자세와 내면적인 진지성ㆍ성실성이 중요하며, 소속 종교와 관계없이 이 내면적인(질적인) 노력으로 절대자를 접해야만 기독교식 표현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영혼의 구원'이 영혼에 있지 외부적인 '종교'에 있지 않다는 논리다. 9년 전에도 이미 이러한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던 나는, 불교인과 니체ㆍ마르크스 같은 자유사상가를 지옥으로 보내는 설교를 들으면서 이분들과 같이 지옥에 가서라도 이러한 목회자를 내생에서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이쯤에 왔으니, 읽는이가 나에게 왜 그 정도로 싫은 모임을 안 떠났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이 시작된다. 속된 말로 나는 매수된 셈이었다. 그 사람들의 친절과 관심, 그 사람들이 베푸는 푸짐한 음식과 서울 견학, 재원이 풍부한 그 교회가 주는 선물에 마음이 팔린 셈이었다. 그들이 매일같이 주는 선물이 나로서는 평생 보지 못한 희귀한 물자였고, 나를 치켜세우고 칭찬해주고 '모시는' 그들의 태도는 내가 평생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베풀어주는' 대신 나를 그만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이미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들은 '살갗이 하얀' 젊은 친구를 다른 교회에 데려가 자신들의 '전과'를 과시했고, '외국인 개종 실적'으로 상부의 인정을 받기도 하였을 것이다. 마음을 판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가난과 어려움을 들먹이며 해명할 생각은 없다. 죄는 죄다.
그런데 왜 부끄러움을 느껴가면서까지 이 글을 쓰는가? 왜냐하면, 그러한 일이 다른 가난하고 어려운 외국인들에게 절대로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모임이 개신교인 것은 틀림없지만, 주류인지 비주류인지는 나도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많은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은 선민의식과 배타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출석과 헌금에 중점을 두고, 자기 집단의 내부 결속에 사력을 다하면서 다른 종교 집단을 모두 악마화하는 것이 그 모임뿐인가? 그리고 외국인 개종을 '주요성과'로 보는 많은 교회가 그 승리를 얻기 위해서 영적이지도 정신적이지도 못한 '물질적인 방편'을 널리 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내 교회도 그렇지만, 밖에 나가 있는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이러한 폐단이 더욱더 심각하다. 옛날에 몇몇 외국인 선교사가 가난한 한국인에게 쓰던 선교방식을 한국의 일부 선교사가 거꾸로 가난한 외국인에게 쓴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체제 주변부에 있던 한국이 이제 체제의 중심부 쪽으로 위치를 어느 정도 상향 조절한 만큼, 중심부의 열강들처럼 '종교적인 진출'을 포함한 신식민지주의적 외부 공략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 모방의 유행병에 걸린 일부 한국 교회가 실질적 경제 성장보다는 '경제적 성과에 의한 선교'에 열을 더 올리는 것인가?
어쨌든 한민족에 많은 해독을 끼친 서양 압제자의 추태를 모방한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가난뱅이의 마음을 물자와 '특별한 관심'으로 끌어 '승리'를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예수께서 이러한 광경을 봤다면 어떻게 생각하셨을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ㆍㆍ(후략)ㆍㆍ

Posted by 미쁘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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